[코인법안 1부] 코인 규제, 왜 미국을 보면 한국이 보일까

웨일로그 편집팀

코인 규제는 어느 한 나라가 혼자 만들지 않습니다. 크게 보면 ① 국제기구 FATF의 권고가 각국 법으로 옮겨지는 경로, ② 미국 의회·규제기관의 판단이 세계 시장에 파급되는 경로, ③ EU가 만든 포괄 단일법 MiCA가 사실상의 표준이 되는 경로, 이 세 갈래로 퍼집니다. 한국은 세 경로 모두에 걸쳐 있지만, 항목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릅니다. 이 글은 그 지도를 먼저 그려 놓고, 시리즈 나머지 회차에서 하나씩 확대해 들어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아래 내용은 모두 2026년 8월 기준이며, 입법 상황은 계속 바뀌므로 실제 판단 전에는 직접 확인이 필요합니다.

경로 1. FATF 권고 → 각국 법으로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Financial Action Task Force)는 돈세탁과 테러자금을 막기 위한 국제 기준을 만드는 기구입니다. 법을 직접 만들지는 못하고 “권고(Recommendation)“를 낼 뿐이지만, 회원국이 이 기준을 안 지키면 국제 금융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세계 금융권의 공동 규칙집 같은 것입니다.

코인과 직접 관련된 조항은 권고 15번(R.15)입니다.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 등)를 등록·인가 대상으로 삼고,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지우며, 일정 금액 이상을 보낼 때 송·수신자 정보를 함께 넘기게 하는 트래블룰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FATF가 2026년 7월 발표한 일곱 번째 이행 점검 보고서(Targeted Update)를 보면, 조사 대상 관할권 중 R.15를 대체로 이행한 곳은 34%, 아예 이행하지 않은 곳은 22%로 나타났습니다. 트래블룰 법제를 도입한 나라 중에서도 절반가량은 아직 실제 감독·제재를 집행한 적이 없다는 지적도 담겼습니다. 원문은 FATF 공식 사이트(fatf-gafi.org)의 2026년 Targeted Update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한국의 트래블룰은 미국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이 FATF 경로에서 왔습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그 근거입니다. 트래블룰이 왜 생겼고 실제 출금에 어떤 제약이 생기는지는 트래블룰 FAQ 글에서 따로 다뤘으니 이 시리즈에서는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경로 2. 미국의 판단 → 글로벌 파급

미국이 영향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고, 대형 발행사·거래소·기관투자자 상당수가 미국 관할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코인이 “증권”으로 분류되느냐,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느냐가 정해지면 그 영향은 미국 밖으로도 번집니다.

현재 미국의 핵심 쟁점은 관할권 다툼입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중 누가 코인을 관할할지를 법으로 정리하려는 것이 시장구조법(CLARITY Act)입니다. 진행 단계를 뭉뚱그리면 안 됩니다. 이 법안은 2025년 7월 하원을 통과했고, 2026년 5월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했으며, 2026년 8월 상원 본회의의 첫 절차 표결이 시작됐지만 8월 휴회 전 본표결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상원은 9월 14일 복귀 예정이고, 통과에는 필리버스터를 넘기 위한 60표가 필요합니다. 즉 “미국이 코인법을 통과시켰다”는 표현은 아직 정확하지 않습니다. 진행 상황은 congress.gov 의안 페이지에서 단계별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자세한 경위는 3부에서 다룹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쪽은 이미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GENIUS Act가 2025년 7월 발효되면서 준비금 보유와 상환 보장이 법으로 명문화됐습니다. 이 법의 내용은 GENIUS Act 정리 글에 있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은 끝났고 시장구조는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미국 규제”를 한 덩어리로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경로 3. EU MiCA → 표준화 효과

EU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기관별로 쪼개 다투는 대신, 암호자산 시장 전체를 하나의 법으로 규율하는 MiCA(암호자산시장법, 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를 만들었습니다. 2024년 6월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정이, 12월 사업자(CASP) 규정이 시행됐고, 기존 사업자에게 주어졌던 경과 기간은 2026년 7월 1일 종료됐습니다.

ESMA(유럽증권시장청)는 이 시점 이후 인가 없이 EU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사업자는 EU법 위반이며, 신규 고객 유치와 마케팅을 즉시 중단하고 질서 있게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공개 성명으로 밝혔습니다(esma.europa.eu 공개 문서). 포괄 단일법의 무서운 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하나의 인가로 27개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대신, 인가를 못 받으면 27개국에서 동시에 문을 닫아야 합니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세 경로에 한국을 겹쳐 보면 위치가 제각각입니다.

  • FATF 경로: 특금법으로 이미 이행 중. 사업자 신고제와 트래블룰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 미국 경로: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GENIUS Act 이후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시차를 둔 추종 양상이 보입니다. 증권성 판단 기준이 토큰증권 규율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흐름입니다(증권토큰화 3부 참고).
  • EU 경로: 방식만 놓고 보면 한국은 EU식 포괄 단일법이 아니라 단계적 개별법을 택했습니다.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1단계, 현재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2단계입니다. 정부·여당은 2026년 하반기 국회 논의를 예고했고 금융위원회도 지원 방침을 밝혔지만, 2026년 8월 현재 이 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은 추진 중인 법입니다. 시행 중인 법과 논의 중인 법을 섞어 말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한국은 미국을 따라간다”가 맞을까

이 시리즈의 축은 “한국 규제는 해외, 특히 미국 흐름을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는 가설입니다. 다만 저희는 이것을 결론이 아니라 검증해야 할 가설로 다룹니다. 실제로 위 지도를 보면 들어맞는 사례와 어긋나는 사례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맞는 쪽은 스테이블코인과 증권성 판단입니다. 미국에서 먼저 기준이 서고 국내 논의가 뒤따르는 모양새가 뚜렷합니다. 어긋나는 쪽도 분명합니다. 트래블룰은 출발점이 미국이 아니라 FATF 국제 권고였고,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해외 추종이라기보다 국내 거래소에서 반복된 사고에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합니다. 포괄 단일법이라는 형식 자체는 EU가 먼저 갔지만 한국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구분이 왜 중요할까요. 해외 뉴스를 국내 상황으로 곧장 번역하는 습관이 손해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통과됐다더라”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이 하원 통과인지 발효인지, 스테이블코인법인지 시장구조법인지, 그리고 그 항목이 한국에서 FATF 경로로 이미 처리된 것인지 아직 논의 단계인지를 구분할 수 있으면 뉴스의 절반은 걸러집니다. 반대로 이 구분 없이 “곧 한국도 똑같이 된다”고 단정하는 정보는, 그 자체가 무언가를 팔기 위한 서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규제 변화는 시세를 예고하는 신호가 아니라, 내가 쓰는 거래소가 계속 영업할 수 있는지와 내 권리·의무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입니다. 이 시리즈가 시세 전망 대신 제도 자체를 다루는 이유입니다.

시리즈 안내

다음 회차부터는 이 지도를 하나씩 확대합니다. 2부에서 미국·EU·한국의 규율 방식을 항목별 비교표로 정리하고, 3부에서 미국 시장구조법이 왜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4부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다룹니다. 5부와 6부는 국내 1단계법과 2단계법, 7부는 법이 바뀔 때 투자자가 직접 확인할 것들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시리즈: 코인 법안 따라잡기 — 미국·EU·한국

미국 시장구조법과 EU MiCA부터 국내 이용자보호법·디지털자산기본법까지, 해외 규제가 한국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투자자에게 무엇이 달라지는지 정리한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