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P 4부] XRP는 실제로 어디에 쓰이나

웨일로그 편집팀

결론부터 말하면, “은행들이 XRP를 쓴다”는 말은 대부분 절반만 맞습니다. 리플이라는 회사의 결제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것과 XRP라는 자산이 실제로 결제를 통과하는 것은 리플 공식 문서에서조차 다른 제품으로 구분돼 있고, 제휴 발표문에는 둘 중 어느 쪽인지 적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2026년 8월 29일 기준으로 공식 문서와 공시를 확인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1부에서 회사·원장·자산의 구분을, 2부에서 합의 방식을, 3부에서 공급 구조를 다뤘습니다. 이번 회차는 수요 쪽입니다. 소송과 증권성 판단은 코인분류 3부에 정리돼 있으니 반복하지 않습니다.

Q1. “은행들이 XRP를 쓴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절반만 맞습니다. 리플은 국경간 결제 상품을 팔면서 XRP를 쓰는 방식과 쓰지 않는 방식을 모두 제공합니다. 회사의 개발자 문서(docs.ripple.com)는 결제 제품과 온디맨드 유동성(ODL, On-Demand Liquidity)을 별도 항목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ODL이 바로 XRP를 통과시키는 방식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ODL을 쓰지 않는 고객은 리플의 소프트웨어를 쓰면서도 XRP를 한 번도 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행이 리플과 손잡았다”는 기사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습니다. 확인해야 할 것은 발표문에 “On-Demand Liquidity” 또는 “digital asset XRP”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지입니다. 실제로 리플 공식 보도자료 중에는 필리핀 송금사 I-Remit, 싱가포르 FOMO Pay처럼 제목에 ODL을 명시한 건들이 따로 있습니다. 명시가 없다면 소프트웨어 계약일 가능성을 먼저 의심하는 편이 맞습니다.

Q2. 그럼 XRP가 스위프트(SWIFT)를 대체하는 건가요?

겨루는 대상이 애초에 다릅니다. 스위프트는 돈을 옮기는 시스템이 아니라 은행끼리 “얼마를 누구에게 보내라”는 지시를 주고받는 메시징 네트워크입니다. 스위프트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0개국 이상 1만 1천여 개 기관이 연결돼 있고, FIN 메시징 서비스가 하루 2,300만 건 이상의 구조화된 메시지를 나릅니다. 메시지는 전달되지만 실제 자금은 코레스(correspondent) 은행 관계와 노스트로 계좌를 통해 움직입니다.

노스트로 계좌란 우리 은행이 상대 나라 은행에 미리 열어 둔 계좌입니다. 해외 송금을 즉시 처리하려면 그 계좌에 돈이 미리 들어 있어야 합니다. 스위프트 자신도 이 구조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합니다. 잔액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아 은행들이 필요 이상으로 돈을 넣어 두게 되고, 그렇게 묶인 자금이 국경간 결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ODL이 없애려는 대상이 바로 이 선자금(pre-funding) 입니다. 메시징을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라, 미리 쌓아 둔 돈 없이도 보낼 수 있게 하자는 접근입니다. “XRP가 스위프트를 죽인다”는 문장이 어긋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3. 온디맨드 유동성(ODL)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나요?

리플 공식 문서의 설명은 단순합니다. XRP를 두 법정통화 사이의 다리(브리지 통화)로 쓴다는 것입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1. 보내는 쪽에서 현지 통화(예: 원화)를 거래소에서 XRP로 바꾼다.
  2. XRP를 XRP 레저로 전송한다. 문서 기준 정산에 3~5초가 걸린다.
  3. 받는 쪽에서 XRP를 그 나라 통화(예: 페소)로 되바꿔 계좌에 넣는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핵심이 있습니다. XRP는 통과할 뿐 쌓이지 않습니다. 보유 시간이 초 단위이므로, ODL 거래가 늘어난다고 해서 누군가 XRP를 사서 계속 들고 있게 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결제에 쓰이면 자연히 수요가 쌓인다”는 서술은 이 구조와 맞지 않습니다. 브리지를 지나간 차량 대수와 다리 위에 주차된 차량 대수는 다른 숫자입니다.

Q4. ODL로 실제 얼마나 거래되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확인하기 어려웠던 항목이 이것입니다.

리플은 3부에서 짚었듯 2025년 5월 이후 분기 XRP 마켓 리포트 발행을 중단했고, ODL 단독 거래량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공식 자료를 이번 작성 시점에 찾지 못했습니다. 검색에 잡히는 2차 보도의 수치들은 서로 수십 배씩 어긋납니다. 어느 하나를 골라 인용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를 오도하는 상황이라, 이 글에서는 어떤 수치도 쓰지 않습니다.

리플이 자사 페이지에서 밝히는 “60개 이상 시장, 누적 1,000억 달러 이상”이라는 숫자는 있습니다. 다만 이는 회사가 스스로 밝힌 수치이고 Ripple Payments 전체 기준이므로, 그중 얼마가 XRP를 통과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원장에 거래는 전부 기록되지만, 어떤 거래가 ODL이고 어떤 거래가 차익거래인지 구분하는 라벨은 붙어 있지 않습니다.

Q5. 리플의 스테이블코인 RLUSD가 XRP를 대체하나요?

단정할 근거는 없지만, 흐름은 공식 자료로 확인됩니다.

RLUSD는 리플이 발행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2024년 12월 17일 글로벌 거래소 상장과 함께 출시됐습니다. 리플 공식 발표에 따르면 달러 예금·미국 국채·현금성 자산으로 전액 뒷받침되며,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의 감독을 받고 매월 제3자 감사기관의 준비금 확인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이후 두바이 금융감독청(DFSA) 승인도 받았습니다.

중요한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리플은 2025년 4월 RLUSD를 자사 주력 결제 상품인 Ripple Payments의 결제 흐름에 직접 통합했다고 공식 발표했고, 국경간 송금사 BKK Forex와 iSend를 초기 적용 고객으로 명시했습니다. 현재 리플의 국경간 결제 솔루션 페이지 제목 자체가 “Cross-Border Stablecoin Payments Platform”입니다. 즉 회사의 결제 사업에서 브리지 역할을 XRP만 하는 것이 아니게 됐습니다.

규모도 빠르게 커졌습니다. 보도 기준 2026년 8월 25일 RLUSD 시가총액이 20억 달러를 넘었고, 그중 XRP 레저 발행분이 약 9억 6천만 달러, 이더리움 발행분이 약 10억 5천만 달러로 절반 이상이 XRP 레저 밖에 있습니다. 이 배분은 작성 시점의 보도 수치이므로 확인이 필요하면 직접 재조회하는 편이 낫습니다.

여기서 이 시리즈의 축이 다시 나옵니다. 발행 주체가 있는 코인의 고유 위험은 회사의 전략 변경이 자산의 수요 경로를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트코인에는 방향을 틀 회사가 없지만 XRP에는 있습니다. “리플이 잘되면 XRP가 잘된다”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회사의 성장이 XRP를 경유해야 하는데, 그 경유가 유일한 경로가 아니게 된 상황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확인하고 갱신해야 할 항목이 하나 늘었다는 뜻입니다.

Q6. XRP 레저의 대출·볼트 같은 기관용 기능은 지금 쓸 수 있나요?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자주 “XRP 레저에 대출 기능이 생겼다”고 소개되는 두 가지는 단일자산 볼트(XLS-65)와 대출 프로토콜(XLS-66)입니다. 볼트는 한 종류의 자산을 담아 두고 예치자별 지분을 기록하는 표준 상자이고, 대출 프로토콜은 그 위에 대출 조건·이자·상환 처리를 얹는 규칙입니다.

XRP 레저에서 새 기능이 켜지는 절차는 원장 규칙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xrpl.org 공식 문서에 따르면 신뢰 검증자의 80%를 넘는 지지를 2주 연속 유지해야 해당 기능이 영구히 활성화되고, 중간에 지지율이 80% 아래로 떨어지면 2주 카운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코드가 릴리스에 포함된 것과 기능이 켜진 것은 완전히 다른 단계라는 뜻입니다.

작성 시점 기준 두 기능 모두 메인넷에서 활성화되지 않았고 검증자 투표 단계에 있습니다. 보도에서는 XLS-65가 약 40%, XLS-66이 약 37% 수준의 지지로 전해지지만, 이번 작성 환경에서 라이브 익스플로러 직접 조회에 실패해 이 수치 자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상태는 livenet.xrpl.org의 amendments 페이지에서 누구나 직접 볼 수 있으니, 수치가 필요하면 그쪽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코인법안 시리즈에서 “발의와 통과와 발효는 다르다”고 강조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입니다. 제안 / 코드 릴리스 / 검증자 투표 / 활성화는 전부 다른 단계입니다.

Q7. 2025년 11월 현물 ETF 상장은 개인 투자자에게 무엇을 바꿨나요?

미국 최초의 XRP 현물 ETF인 Canary XRP ETF(종목코드 XRPC)가 2025년 11월 13일 나스닥에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전자공시 시스템 EDGAR에 이 펀드의 상장 증명 서류(Form 8-A)가 올라와 있어 상장 사실 자체는 1차 자료로 확인됩니다. 연 보수는 0.50%이고, 선물이 아니라 실물 XRP를 보유하며 보관은 제미니 트러스트와 비트고 트러스트가 맡습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을 나눠 보면 이렇습니다.

  • 바뀐 것: 기존 증권계좌에서 살 수 있고, 지갑·개인키·시드 문구를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래소 파산 위험 대신 펀드·수탁사 구조의 위험을 지게 됩니다.
  • 바뀌지 않은 것: 연 0.50%의 보수가 계속 나가고, 미국 증시 개장 시간에만 거래되며, 원장에서 직접 쓸 수 없습니다. 송금하거나 수수료를 내는 데 쓰지 못하니 Q3에서 본 실사용과는 무관한 보유 방식입니다.

오해가 특히 많은 지점을 하나 짚습니다. 이 상장은 SEC가 XRP라는 코인을 인증한 사건이 아닙니다. 펀드라는 금융상품의 상장이고, 게다가 개별 심사가 아니라 거래소에 적용되는 일반 상장기준에 따라 이뤄진 절차입니다. ETF 승인이 코인 인증이 아니라는 구분은 비트코인 현물 ETF 해설코인분류 3부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자금 유입에 대해서도 한 가지만 적어 둡니다. 상장 전 대형 금융기관들은 첫해 최대 80억 달러 규모의 유입을 전망했지만, 2026년 8월 현재 보도되는 누적 순유입은 15억 달러 안팎입니다. 이 차이를 시세 이야기로 옮기지 말고, “전망은 전망일 뿐”이라는 사실로만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장 전 예측치를 근거처럼 인용하는 콘텐츠가 여전히 많습니다.

정리 — “제휴 발표”와 “실사용”을 가르는 네 가지 질문

시바이누 3부에서 “대기업이 SHIB를 받는다”는 목록을 검증했을 때와 문제의식이 같습니다. 어떤 코인이든 실사용 주장을 만나면 다음 네 가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걸러집니다.

  1. 자산이 명시됐는가. 발표문이 회사·소프트웨어·네트워크 이름만 말하는지, 아니면 그 코인이 거래를 통과한다고 적었는지.
  2. 양쪽이 다 확인했는가. 한쪽 보도자료에만 있고 상대 기업 공식 채널에는 흔적이 없는 발표가 흔합니다.
  3. 어느 단계인가. 검토·MOU·파일럿과 실제 가동은 다릅니다. 블록체인에서는 여기에 “코드는 있지만 켜지지 않은” 단계까지 더해집니다(Q6).
  4. 셀 수 있는가. 규모를 공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 서사입니다.

XRP는 이 네 질문에 대해 답이 갈립니다. 원장 위 거래는 누구나 셀 수 있지만 그중 무엇이 실제 결제인지는 라벨이 없고, 회사의 공식 수치는 분기 리포트 중단 이후 줄었습니다. 그러니 “XRP는 실제로 쓰인다” 또는 “전혀 안 쓰인다” 어느 쪽이든 단정하는 콘텐츠는 근거보다 결론이 먼저 나온 것으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확인 가능한 사실은 ODL이라는 구조가 존재하고 그것을 명시한 고객 사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규모를 외부에서 검증할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것 두 가지입니다.

다음 5부에서는 이 시리즈를 XRP 밖으로 일반화합니다. 발행사가 있는 코인을 만났을 때 보유 비중·공시·제휴·소송 이력을 각각 어디서 어떻게 확인하는지 체크리스트로 정리합니다.

1차 자료 확인처: ODL의 작동 구조와 제품 구분은 리플 공식 개발자 문서(docs.ripple.com의 Payments·ODL 항목), RLUSD 출시·준비금·NYDFS 감독과 Ripple Payments 통합은 리플 공식 보도자료(ripple.com/ripple-press), 국경간 결제 상품 소개는 ripple.com/solutions/cross-border-payments, 스위프트의 메시징 역할과 노스트로 선자금 문제는 스위프트 공식 페이지(swift.com/payments/correspondent-banking), 기능 활성화 요건은 xrpl.org 공식 Amendments 문서, XRP 현물 ETF 상장 사실은 미국 SEC EDGAR에 공시된 Canary XRP ETF(CIK 0002039505)의 Form 8-A 서류를 근거로 했습니다. RLUSD 시가총액 배분, ETF 누적 순유입, XLS-65·XLS-66 검증자 지지율은 2차 보도 기준이며 본문에 그렇게 밝혔습니다. 이 글을 쓴 환경에서는 외부 사이트 직접 접속이 차단돼 라이브 온체인 조회는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