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RP 1부] 리플과 XRP, 무엇이 회사고 무엇이 코인인가
XRP는 자산(코인), XRP 레저(XRP Ledger)는 그 코인이 오가는 네트워크, 리플(Ripple)은 그 네트워크 위에서 사업하는 회사입니다. 이름이 뒤섞여 쓰이지만 셋은 법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별개이고, 이 구분을 세우지 않으면 XRP를 둘러싼 논쟁이 대부분 이해되지 않습니다. 특히 중요한 건 순서입니다. 회사가 코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코인과 네트워크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 회사가 세워져 물량을 넘겨받았습니다.
이 글은 “XRP와 리플 — 발행 주체가 있는 코인” 5부작의 1부입니다. 이 시리즈의 목적은 XRP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발행 주체가 뚜렷한 코인을 어떤 눈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XRP를 사례로 익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온체인 수치는 모두 2026년 8월 26일 오전 9시(한국시간) 기준으로 XRP 레저 공개 노드에 직접 조회한 값입니다.
이름 세 개부터 떼어놓기
먼저 헷갈리는 이름들을 한 줄씩 정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 XRP — XRP 레저에서 쓰이는 기본 자산입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BTC, 이더리움의 ETH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 XRP 레저(XRPL) — 거래 기록을 담는 공개 원장, 즉 네트워크 자체입니다. 누구나 노드를 띄워 참여할 수 있고, 이 글의 데이터도 그 공개 노드에서 가져왔습니다.
- 리플(Ripple, 옛 리플랩스) — 미국의 민간 기업입니다. XRP를 대량 보유하고 있고 XRP 레저 관련 소프트웨어와 결제 사업을 합니다.
원래는 원장 이름도 “리플”이었습니다. 공식 문서(xrpl.org)는 회사와 원장, 자산을 구분하기 위해 자산을 XRP로, 원장을 XRP 레저로 부르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즉 이름이 겹치는 건 사고가 아니라 초기 작명의 흔적이고, 그래서 지금도 2차 기사에서 “리플 코인”처럼 뭉뚱그린 표현이 흔합니다.
이 구분이 왜 실무적으로 중요한지 한 가지 예를 들면, 은행이 리플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는 발표와 그 은행이 XRP를 실제로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회사와 자산이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4부에서 따로 다룹니다.
코인이 먼저, 회사가 나중
xrpl.org의 공식 연혁에 따르면 순서는 이렇습니다.
-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 데이비드 슈워츠, 제드 맥케일럽, 아서 브리토 세 사람이 원장을 개발했습니다. 출발점은 “채굴 없는 비트코인”이라는 구상이었습니다.
- 2012년 6월 — XRP 레저가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XRP 1,000억 개가 한 번에 생성됐고, 이후 새로 발행되는 XRP는 없습니다.
- 2012년 9월 — 창업자들이 크리스 라슨과 함께 회사를 세웠습니다(설립 직후 OpenCoin으로 개명, 2013년 9월 리플랩스로 다시 개명, 지금은 리플).
- 창업자들이 회사에 800억 XRP를 증여 — 공식 문서 표현으로는 “회사가 XRP 레저 위에서 개발을 진행하는 대가로” 넘긴 것이고, 나머지 200억은 창업자들이 보유했습니다.
- 2017년 — 회사가 보유 물량 중 550억 XRP를 에스크로(조건이 충족돼야 열리는 자물쇠 걸린 금고)에 넣었습니다. 이 구조는 3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지점은 4번입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에는 “총량의 80%를 한 회사가 받는” 단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증여가 나중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의 소송에서 핵심 배경이 됩니다. 소송과 증권성 판단은 코인분류 3부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으므로 이 시리즈에서는 반복하지 않고, 대신 그 구조가 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집중합니다.
“채굴이 없다”는 말의 실제 의미
XRP에는 채굴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흔히 “그래서 친환경적이다” 정도로만 소비되고, 정작 투자자에게 중요한 함의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채굴이 없다는 건 새로 생기는 XRP가 없다는 뜻입니다. 비트코인은 블록마다 새 코인이 발행되어 채굴자에게 가고, 이더리움은 검증자에게 보상이 갑니다. XRP 레저에는 그런 신규 발행이 아예 없습니다. 대신 거래마다 내는 아주 적은 수수료가 누구에게도 가지 않고 소각됩니다. 공식 문서는 이를 “수수료는 어느 쪽에도 지급되지 않으며, 해당 XRP는 되돌릴 수 없이 파기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표준 거래의 최소 수수료는 10 드롭, 즉 0.00001 XRP입니다.
이 설명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XRP 레저는 각 원장(블록에 해당)마다 그 시점의 총량을 기록해 두기 때문에, 공개 노드에 물어보면 누구나 같은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조회 대상 | 시점 | 기록된 XRP 총량 |
|---|---|---|
| 조회 가능한 가장 오래된 원장(32,570번) | 2013년 1월 1일 | 99,999,999,999.996 XRP |
| 최신 검증 원장(106,544,390번) | 2026년 8월 26일 | 99,985,624,162.66 XRP |
13년 반 동안 총량이 약 1,437만 XRP 줄었습니다. 늘어난 게 아니라 줄었고, 그 감소분 전부가 수수료로 태워진 몫입니다. 참고로 1번 원장부터 32,569번까지는 초기 운영 과정에서 기록이 유실돼 조회되지 않습니다. 이런 확인 작업 자체는 블록 익스플로러 활용법에 정리해 둔 방식과 같습니다.
정리하면 XRP의 공급 구조에서 변수는 “얼마나 새로 생기느냐”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1,000억 개 중 얼마가 어디에 묶여 있느냐”입니다. 발행량 규칙이 논쟁의 중심인 비트코인·이더리움과는 읽는 축 자체가 다릅니다.
발행 주체가 있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여기부터가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관점입니다. 발행 주체가 뚜렷한 코인은 세 가지 면에서 판단이 복잡해집니다.
첫째, 공급의 상당 부분이 한 곳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공급 일정은 코드에 박혀 있어 누구도 바꾸지 않습니다. 반면 회사가 대량 보유한 자산은 그 회사가 언제 얼마를 시장에 내놓을지가 변수로 남습니다. 에스크로는 이 변수를 없앤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게 만든 장치입니다. 이 차이는 3부에서 자세히 봅니다.
둘째, 회사의 사업 성과와 자산 수요가 얽혀 보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얽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리플의 사업이 잘된다고 XRP 수요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무관하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휴 발표”와 “실제 사용”을 구분하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셋째, 볼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리플은 비상장 회사입니다. 2026년 1월 경영진이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상장사라면 정기적으로 공시되는 재무 정보를 투자자가 확인할 수 있지만, 비상장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투자자가 볼 수 있는 것은 회사가 자발적으로 내는 분기별 XRP 마켓 리포트와 온체인 데이터 정도입니다. 회사가 스스로 공개하기로 한 만큼만 보인다는 점은, 발행 주체가 있는 코인을 볼 때 반드시 감안해야 할 구조적 한계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 세 가지는 XRP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단이나 회사가 초기 물량을 대량 보유한 코인은 흔하고, 그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마지막 5부는 XRP를 벗어나 일반화된 확인 항목으로 마무리합니다.
시작하기 전에 걸러둘 오해 두 가지
이 주제는 2차 정보의 오염이 특히 심합니다. 다음 두 문장은 사실이 아니므로, 어느 글에서 보든 근거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 “SEC와 CFTC가 XRP를 디지털 상품으로 공식 지정해 증권 논쟁이 끝났다” — 지정한 적이 없습니다. 2026년 3월 해석은 디지털 상품의 예시로 이름을 언급했을 뿐이고, 같은 자산도 투자계약 형태로 팔리면 그 거래는 증권 거래가 될 수 있다는 단서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코인분류 3부에 정리해 뒀습니다.
- “미국 시장구조법(CLARITY Act)이 2026년 초에 통과됐다” —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진행 상황은 코인법안 3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2부에서는 채굴도 스테이킹도 없는 XRP 레저의 합의 방식이 작업증명·지분증명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검증자 목록을 누가 정하느냐는 오래된 비판까지 비교표로 정리합니다.
1차 자료 확인처: XRP 레저 공식 문서와 연혁(xrpl.org), 수수료 소각 규정(xrpl.org 거래 비용 문서), 원장 총량은 XRP 레저 공개 노드 조회(ledger 명령), 회사 연혁 및 분기별 XRP 마켓 리포트(ripple.com).
이 글은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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